원문보기 : http://webzine.hrdkorea.or.kr/section/newsletter/view?id=3498&page=1

 

 

봄바람에, 봄 향기에 취해 길을 걷는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설렌 가슴 안고 걷다
샛노란 꽃 가득한 마을과 마주한다.
누군가 노란 물감을 풀어 봄을 그리기라도 한 것일까?
여기도 저기도 온통 봄이다.
노란빛 산수유가 지천에서 봄 인사를 건네는 마을, 구례 산수유마을로 향했다.


산수유마을길을 거닐다

지리산 자락 구례 산동면의 봄은 노란 산수유로 장관을 이룬다. 산동면에는 어디를 콕집어 산수유마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산수유가 만개해 있다. 그 중에서도 상위마을에서부터 하위 마을 그리고 반곡마을과 평촌마을로 이어지는 산수유마을길은 가장 대표적인 코스라고 할 수 있는데 돌담길의 옛 정취와 시골마을의 푸근함 그리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까지 맛볼 수 있어 눈과 귀가 즐겁다.

가장 위쪽에 위치한 상위마을은 인근 산자락까지 모두 산수유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마주하는 순간 절로 감탄사를 내뱉곤 한다. 여러 산수유마을 중 가장 산수유가 많이 재배되는 곳인 만큼 규모부터가 남다르다.
상위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옛 돌담길이다. 주차장 옆에 위치한 옛 돌담길은 비록 그리 긴 길은 아니지만 이끼 낀 옛 돌담이 산수유와 한데 어우러져 옛 시골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옛 돌담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곳곳에 피어있는 산수유가 마치 집들과 한 몸인 듯 자연스레 소박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다. 상위마을은 20여 곳의 민박집도 함께 운영하고 있기에 이곳에서 1박을 하며 산수유와 지리산을 함께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여행 방법이다. 산수유가 뻗어가는 길을 따라 산자락을 오르다 보면 자그마한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 앉아 두 발 아래 산수유를 두고 저 멀리 첩첩이 쌓인 구례의 멋진 산자락을 보고 있으면 이곳까지 올라오며 살짝 흘린 땀방울도 어느새 살랑대는 봄바람에 금세 말라버린다.

산수유마을에서는 식사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미리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함께 여행 온 이들과 나누어 먹으며 봄을 반가이 맞이하는 것도 좋겠다.
상위마을을 빠져 나온 후, 여태 올라온 길을 되돌아 아래로 내려가면 하위마을이 나온다. 하위마을은 소담스러운 돌담길과 소박한 마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위마을만 둘러보고 곧장 반곡마을로 내려가거나 애초에 이곳까지 올라오지 않고 반곡마을쪽과 산수유 축제행사장 근처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하위마을에서는 보다 여유 있게 마을을 거닐 수 있으며 산수유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담기에도 제격이다.

 

산수유꽃길을 거닐다

하위마을에서 반곡마을과 평촌마을로 이어지는 산수유꽃길은 아마도 이곳 산수유마을의 하이라이트 구간이 아닐까 싶다. 시원한 냇가를 따라 이어져있는 꽃길. 데크로 이어진 이 길은 데크 양쪽으로 산수유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때마침 봄바람이라도 불어온다면 기나긴 겨울 동안 잔뜩 웅크려있어 서늘했던 마음이 금세 따스하게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이 길을 연인과 함께 걷는다면 산수유의 꽃말인 ‘영원한 불변의 사랑’을 느끼듯 서로의 사랑을 속삭여 보는 것도 좋겠다.


산수유 꽃은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얇은 꽃잎이 여러 갈래로 이루어져 있는 모양으로 다른 봄꽃들의 화려함보다는 수수함 또는 소박함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산수유는 봄에는 노란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새빨간 열매를 맺는다.

 

봄에도 아름다운 산수유마을이지만 산수유 열매가 한 가득 열려있는 가을의 모습도 아름답다. 산수유마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봄뿐만 아니라 가을에도 산수유마을을 찾는데 이때는 봄과는 달리 산수유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몇 되지 않아 아주 호젓하게 산수유마을을 즐길 수 있다.

산수유꽃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냇가에는 신선들이 놀고 갈법한 넓적한 바위들이 잠시 쉬어가라고 외치는 듯 느껴진다. 2km 남짓한 길을 걸어 내려오며 지친 발을 물에 담가 보기로 한다. 물결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앞에 펼쳐지는 산수유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지금 흡사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산수유일번지를 거닐다

상위마을에서 평촌마을로 이어지는 산수유 마을에서 9km 가량 떨어진 계척마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시목이 있다. 1000 년을 넘긴 이 산수유 시목은 중국 산동성에서 시집 온 여인이 최초로 심었다 전해지는데 세월이 흐르며 구례는 물론 전국각지로 산수유가 퍼져나갔다고 한다.

계척마을은 현천마을과 더불어 지리산 둘레길 ‘산동-주천 구간’에도 포함되어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모든 코스가 아름답고도 저마다의 특색이 있기로 유명하지만 봄만큼은 산수유 가득한 계척마을과 현천마을이 포함된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봄의 완연한 기운을 느끼며 보다 가볍고 상쾌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천마을은 계척마을에서 3km 남짓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이 두 마을은 앞서의 산수유 마을보다 사람들이 덜 찾는 곳이기에 조금 더 호젓하고 분위기 있게 산수유를 즐길 수 있다.
현천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있는 저수지를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데 봄바람에 잔잔히 일렁거리는 저수지 위로 노란 산수유가 투영된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현천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이 모습을 담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사들이다.

저수지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 낮은 담벼락위로 산수유가 골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다. 산수유나무에 둘러 싸여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가끔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라도 건넬라치면 어디에서 왔느냐며 연신 마을 자랑을 늘어놓기에 여념 없으시다.


마을 뒤편 전망대에 한번 올라 보라하시기에 그길로 곧장 올랐더니 현천마을이 한눈에 다 담긴다. 산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된 산수유는 어느새 마을 전체를 노랗게 감싸고 내 마음도 노란빛으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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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人터뷰 - 허진규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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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궁금했다.
어떻게 흙으로 저렇게 커다랗고 다부진 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옹기에 발을 들인 건 그때부터였다.
숱한 역경을 겪으며 방황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어느덧 그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 했던가. 지천명(知天命)을 지나는 그는 이제 옹기가 자신의 길임을 안다.
글. 김혜민 / 사진. 이승훈



고집불통 겁 없는 소년,
옹기장의 길로 들어서다


흙을 반죽하여 물레를 돌려가며 옹기 모양을 잡고 잘 다듬어 건조시킨 후 다시 유약을 발라 1200도씨의 고온에서 구워내기까지. 옹기는 여전히 그 속에 흙 기운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호흡한다.

우리조상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해 생명을 부여받은 그릇, 옹기.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피부와 머리카락 색 다른 외국인들마저 이 생명력 넘치는 그릇에 매혹된 까닭이다. 그리고 올해로 벌써 36년째, 기나긴 세월을 옹기와 더불어 살아온 허진규 옹기장은 그 그릇의 우수성을 알리는 접점에 서있는, 살아있는 문화 그 자체다.

지난 몇 년간 미국, 호주, 유럽 등을 순회하며 숱하게 옹기 제작 시연을 해온 그는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로서 울주군에 위치한 외고산옹기마을에 터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옹기집성촌으로 유명한 여기가 바로 제 고향입니다. 아버지 역시 평생을 옹기장으로 활동하셨지요. 태어난 환경부터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항아리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자랐으니 자연스레 옹기를 배우겠다고 선언하게 된 거지요.”

겁도 없이 옹기의 세계에 덜컥 발을 들이려는 아들을 두고 부모는 필사적으로 반대했단다. 그 자신이 옹기장이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외롭고 고되며 힘든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 터.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아들의 의지에 결국 부모도 항복을 선언했다고. 이후 그는 중학교 진학까지 포기해가며 오로지 옹기 하나에만 전념하기에 이른다.

“옹기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배우기 힘들어요. 최소 15년 정도는 배워야 제대로 옹기를 만드는 기능장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언뜻 보기엔 재미있어 보여도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테크닉 발전은 더욱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래도 계속 했습니다.

때로는 자투리 시간을 내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도자물레까지 스스로 배워나갔죠. 나중엔 제 본연의 기술과 더해져 굉장히 재미있는 기술이 나오더라고요. 옹기 제작시연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고요. 스스로에게 굉장히 뿌듯했죠.”

 

 

 

옹기가 삶이 된 청년,
시련도 굳건히 받아들이다

사실 허진규 옹기장이 기술을 연마할 무렵은 이미 플라스틱 용기가 유통되기 시작해 옹기가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던 때였다. 때문에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옹기업 종사자 수가 300여 명 남짓할 정도로 영화를 누리던 마을은 이제 고작해야 30명, 그나마도 기능을 가진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가 됐다.

그러다보니 옹기를 매개로 맺어온 선배들과의 나이 차이도 크다. 그와 선배들의 평균 나이차는 약 10~15년 이상. 그 커다란 틈이 아쉬워선지 그의 선배들은 유난히도 살뜰히 그를 챙긴다.

“35살 때였나? 무릎이 퇴행성이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계속 이렇게 무릎을 쓰면 앞으로 못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충격적이었죠. 지금이야 흙반죽이며 옹기성형에 기계의 도움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제 힘으로 해내야 했으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겁니다. 제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옹기는 그의 삶 자체라는 것. 내가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옹기 맥이 끊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 걷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후배양성을 할 때까지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결정지었단다.

“지금은 학교에 나가서 옹기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졸업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 한해 마을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 작업실에서 수련중인 학생이 바로 저의 공식적인 무형문화재 전수자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건만 몇 년째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수련에 임하는 수제자가 내심 기특하기만 한 허진규 옹기장.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제자와 함께 실용옹기 제작에 힘쓰는 것이다.

“옹기는 예부터 항상 생활에 밀접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창고에서는 곡식저장용기로, 부엌에서는 각종 장이며 찬의 저장용기로 또는 농사용품이나 문방사우로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죠. 저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어울리는 옹기를 만들고 싶어요. 인테리어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살아있는 문화재,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옹기장의 길을 선택한 허진규 옹기장. 그동안 그는 다사다난한 삶의 얼굴을 마주하며 더욱 단단해져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억하는 가장 보람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 2008년, 미국인들 앞에서 옹기 제작 시연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도자협회모임인 엔시카(NCECA)에서 여는 행사였는데 미국의 도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관해 연구분석하는 명망 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매번 전 세계의 도예작가를 2명씩 선정해 행사에 초청하는데 거기에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초대된 것입니다.”

이후 그는 우리 옹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약 30여 개국을 순방하며 자진하여 국위선양을 해오고 있다. 건강이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경이로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서면 그 순간은 몸이 아픈 것도 절로 잊혀진다고. 옹기를 만드는 기술 그 자체를 높이 사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든단다.

막상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옹기를 그저 김치를 담는 저장그릇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이유일 터다. 그는 몇 년 전 열린 기능경기대회에서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를 덧붙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당시 울산에 지역특성화라고 해서 ‘옹기’부문도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죠. 그때 출제위원을 하며 느꼈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렸던 도면을 꺼내어 보곤 하니까요. 기능경기대회 종목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분명 그 기술력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배우는 이가 없어 아쉽게도 5년 만에 종목을 접어야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는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기술을 전문화시켜 그 분야의 장인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뜻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옹기. 그 속에서 우리네 고유의 음식인 된장, 간장, 김치 등은 맛있는 발효를 시작한다.

소성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숨구멍 사이로 공기가 드나들며 미생물의 활동이 조절되는 것이다. 그뿐이랴. 쌀, 보리 등의 곡식을 담으면 다음 해까지 썩지 않는다. 고온의 가마 안에서 나무가 타며 생기는 연기가 옹기의 안과 밖을 휘감으며 방부성 물질을 덧입히는 덕분이다.

이렇게 수세기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자랑스러운 우리문화 ‘옹기’를 세월과 함께 고이 지켜낸 무형문화재 허진규 옹기장. 그는 오늘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우직이 앉아 옹기의 미래를 빚어나가는 데에 여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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