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하던 정밀공구 국산화에 성공하며 지난해 연매출 총 1,600억 원의 성공신화를 이룩한 마팔에이치티티() 박주석 대표가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금속 제조회사의 현장업무에서 우역회사의 기술영업에 이르기까지 기술관련 산업의 A-Z를 정복한 그가 성공의 핵심으로 꼽은 것은 기술을 향한 꾸준한 집념이었는데요. 이번 아프로 피플에서는 그와 나눈 열정 가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칠 줄 모르는 패기의 청년, 사업 꾼으로 거듭나다




△마팔에이치티티(주) 박주석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박주석 대표가 기술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만난 은사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기술 관련 사업에 대해 조금씩 터득해 나가던 그는 기술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쌓기 위해 동아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의 낭만을 체감할 새도 없이 낮에는 회사에서 기술 전문 원으로, 밤에는 학교에서 배움에 목마른 학생으로 1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했습니다.




금속회사, 알루미늄 철 제조회사를 거치며 주로 현장업무를 수행하던 그는 독일의 공구들을 수입, 판매하는 무역회사 GTS(German Tooling System)에 입사하면서 기술영업 분야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공구와 관련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도 이 시절 체득했던 노하우가 기반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1991, 그는 공구를 수입, 판매하는 하이테코상사(()마팔하이테코)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마팔에이치티티()생산제품의 판매를 전량 담당하고 있는 이 곳은 공구 판매 및 엔지니어링 전문 회사입니다.




10여 년간 회사를 착실히 운영해 나가던 그는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하던 정밀공구를 국산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조회사였던 성원특수공고를 인수한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듬해인 2001년 독일의 마팔와 합작하여 마팔에이치티티()를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도전 앞에 선 그의 마음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바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마팔에이치티티(주) 박주석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제조에서 판매까지 한번에, 멀티플레이어를 탄생시키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유관기업들에서는 초경공구나 수입산 다이아몬드 절삭공구를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그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해오던 다이아몬드 절삭공구가 마침내 생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외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필요한 엔진, 트랜스미션, 브레이크 부품 등의 가공에 필요한 정밀절삭공구도 함께 생산해내면서 회사는 더욱 분주해졌습니다. 기존의 수입제품에 비해 질은 뒤지지 않으면서도, 시중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그의 공구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현대,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국내외 자동차회사, 자동차부품가공업체들은 이제 그의 충실한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기아자동차 해외 제조공정에 직접 수출하거나, 마팔를 통해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 국가와 거래하면서 생산량을 늘려나갔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2005년에는 자동차 부품 가공회사 ()엔엘티까지 설립했습니다.




파죽지세로 성공가도를 열어가던 그는 마침내 지난 2014년 전체 연매출 1,600억이라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조, 판매, 엔지니어링, 가공 등 다분야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나가는 노하우는 오로지 한가집니다. 기술이죠. 꾸준히 기술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갔습니다. 제조기반 없이 판매부터 시작한 제가 독일의 기술을 보고 들으면서 어떻게 내수시장에 접목할 수 있을지 답을 찾은 것도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직원의 자부심이 곧 회사의 능력, 인재양성을 위한 윤활유를 덧칠하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지만 박 대표는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때문에 마팔에이치티티()()마팔하이테코에서는 각각 연구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열정은 곧 수상으로 이어졌는데요. 2008년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인증 획득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천만 불 수출의 탐 수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신기술 개발과 국산화 등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상 표창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특허 5, 디자인 등록 3, ISO등록 2건 등 그가 만들어낸 성과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독일 마팔28년간 교류하는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육 시스템이었습니다. 모든 제조회사들이 고등학생들에게 현장업무를 가르치며 채용까지 연계하고 있었는데, 생산성은 높아지고 이직률은 낮아지는 효과가 있더군요."




직원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여느 회사보다도 높은 수준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학습병행제, 해외 세미나 파견, 전 사원 어학교육비 및 학자금 지원 외에도 부산기계공고와 취업약정협약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여 독일 마팔3개월간 파견교육에 보낸 다음 정식 직원으로 채용합니다.




직원과 함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나가고 싶다는 박주석 대표. 그 한걸음 한걸음이 열어갈 새로운 정밀기기 세상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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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한국인 아흔 여섯 번째 수상자 이왕기 대표는 반도체 제작공정의 후공정 설비 제작에 25년간 종사한 숙련기술인입니다. 이번 아프로 피플에서는 대한민국 세계 1위 반도체 기술 강국으로 이끈 숨은 주역 이 대표를 만나봅니다.

 

 




적성을 찾아 공고로 진학하다




 

△(주)대성엔지니어링 이왕기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이왕기 대표는 어릴 때부터 기계를 고치고 뜯어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기계'분야가 자신의 적성이라고 확신하고 공고 진학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녀 교육에 남다른 열의를 가진 아버지와의 갈등이었는데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던 제가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성을 찾았고, 이미 어떤 분야에서 일할지를 결정한 저에게 '좋은 대학'이라는 타이틀은 무의미했어요."

 



이 대표는 굳은 신념으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지역 명문이던 의정부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당시 법랑냄비 업계1위였던 동어실업에 입사했습니다. 어린나이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과를 내는 동료가 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처음엔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나왔더라구요. 내가 하는 일에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더군요."

 


 

이 대표는 뒤늦게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회사 인근 오산전문대에 야간 입학했습니다. 요즘처럼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던 당시에 매일 퇴근 후 수원과 오산을 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 회사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때의 기억은 오늘날 이 대표가 배움을 희망하는 직원에게 아낌없이 후원을 하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전정신의 산물 대성엔지니어링, 업계 1위로 우뚝 서기까지




 

이 대표는 두 번째 직장인 대일화학에 근무하던 중 창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 때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덟. 린 나이에 창업을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모두가 말렸지만, 한 번 결심을 하고 나니 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아버지 소유의 농토를 담보로 대출받은 2천만 원의 자본이 전부였습니다. 창업자금으로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습니다. 설계 위주우의 회사를 차리는 데 꼭 필요한 컴퓨터와 오토케드와 같은 설계 프로그램을 장만하는 데 절반인 1천만 원을 써버렸습니다.

 



남은 1천만 원의 사무실 보증금으로 냈습니다. 이 대표와 경리 직원, 그리고 설계 직원 둘. 자본금 2천만 원에 유보자금 0, 네 명의 직원으로 차린 회사가 현재 62명의 직원이 연 매출 156억 원(2014년 기준)을 올리는 ()대성엔지니어링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대성엔지니어링 이왕기 대표와 직원들 ⓒ한국산업인력공단



대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제작 공정의 후 공정 설비를 주력 생산하는 강소기업입니다. 대표상품은 체인지 키트와 UV조사기. 둘 다 반도체 제작 공정 중 후 공정에 필요한 제품 틀로, 대성엔지니어링이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것입니다.

 


 

비싼 가격과 관리의 어려움 등 수입 설비의 한계가 있었지만, 대성엔지니어링만의 기술력으로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해지면서 반도체 산업의 생산성, 대응 속도 향상 및 원가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오늘의 성공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사내 부설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매년 매출액의 6%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는데, 오늘의 성과에 취해있을 새가 어디 있겠습니까."

 

 






직원 개개인의 발전이 모여 회사의 발전이 된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7, IMF로 수주 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데요.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며 위기를 극복하던 여타 회사들과 달리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구성원을 다독였습니다.

 



다만 수주 량이 줄어드니 작업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남은 시간을 직원 교육에 투자했습니다. 전 직원의 참여하는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고, 매일 아침 1시간씩 외국어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998, 대성엔지니어링은 최고 수익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표가 직원을 선발할 때 학벌과 학력은 큰 고려 사항이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직원이 있다면 아낌없이 후원합니다. 등록금 지원은 물론, 학업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게 근무시간 조정 등의 편의도 제공합니다.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MBA 진학도 지원해, 현재까지 세 명의 직원이 MBA과정을 마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오산대학교와 연계하며 재학생의 현장실습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일터의 배움터 화'를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첫 직장에서 받은 배려를 경영인이 되어 직원들에게 그대로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의 발전은 혼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직원 개개인의 발전이 하나하나 모여 나타나는 결과죠. 직원에 대한 투자는 결국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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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기계(주) 이원호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원호 대표는 33년 동안 쇼트기계 하나만 보고 달려왔습니다그 인내와 노력의 시간 덕분에 마침내 세계 기업들과 견줄만한 강소기업을 일궈낼 수 있었습니다이번 아프로 피플에서는 이달의 기능 한국인 아흔 네 번째 수상자이자 쇼트기계 제조업계의 선구자신원기계(이원호 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쇼트기계 국산화 개발, 국내 쇼트업계의 선구자가 되다



△신원기계(주) 이원호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원호 대표는 학창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스스로 학비를 충당하여 서울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73, 한국쇼트기계에 정식으로 입사하며 쇼트업계에 입문하게 된 그는 자연스레 외국의 선전 기술을 체득해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쇼트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부족하여, 대부분의 기업들이 외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6, 이 대표는 마침내 쇼트기계 전문회사인 신원기계()(이하 신원기계)를 설립하게 됩니다. 수십년 쇼트외길을 걸어온 그가 쇼트기계 전문회사를 창업하며 업계에 불러일으킨 혁명의 바람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국내 기술력도 충분히 외국기업들에 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 확신에 신원기계를 탄생시킨 것이고, 또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확신은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대표는 외국 기업들이 잠식해온 쇼트기계의 국산화 대체 개발에 앞장서, 20여 종의 수입 쇼트기계를 대체 개발해냈습니다. 이로써 수요기업의 원가 절감은 물론, 품질력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국내에서 만들어진 수입 대체 쇼트기계는 보통 가격이 수입의 절반 정도며, 유지와 보수도 훨씬 용이합니다. 현재 신원기계는 쇼트기계 관련 7건의 단독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2건의 신규 특허를 출인해 놓은 상태입니다.

 



쇼트기계 제조의 전통 강국은 독일, 스위스, 일본 등인데, 현재는 국내 범용 쇼트기계중에서 수입품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우리나라 쇼트기계 기술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최근 신원기계가 수주한 파키스탄 기업의 장비 계약 건도 독일, 스위스, 터키, 일본 등 외국기업들과의 경재에서 이겨 따낸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대표는 외국 기업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쇼트기계의 해외 수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그는 가공품에 따라 특화된 자동차 쇼트기계 개발에 가장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자체 개발해 특허권까지 보유한 신형의 자동차 기계로 승부를 걸어야 해외를 비롯해 국내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회사 성장을 견인한 녹색기술인증 히트상품



현재 신원기계의 대표 제품은 건축 가설재인 알루미늄폼용 '와이어 메쉬 벨트 쇼트 플라스팅 장치' 입니다. 알루미늄폼 건축물의 골조공사에 사용되는 거푸집으로, 고가이기 때문에 사용 후 표면에 달라붙은 콘크리트를 제거해 다시 사용합니다




알루미늄폼을 재사용하기 위해서는 화학약품 탱크에 알루미늄폼을 넣어 불린 후 여러 명의 작업자들을 동원해 고압세척기 등으로 세척하고 에어로 먼지를 터는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신원기계에서 개발한 알루미늄폼 쇼트기계를 사용하면 화약약품을 전혀 쓰지 않는데다, 공정을 자동화해 운영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친환경적이라 작업자의 건강에 해를 끼치지도 않습니다.

 



'와이어 매쉬 벨트 쇼트 플라스팅 장치'는 건축, 자동차 부품 주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데요. 이 제품은 쇼트 기계에서 표면 처리 대상물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 부분을 기존 고무 재질 대신 다이아몬드 패턴 망으로 바꾼 것입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망사 형태기 때문에 한 번에 위아래 면을 모두 처리할 수 있어 작업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또한, 대상물의 온도가 높을 경우 고무가 녹아서 컨베이어 벨트가 마모되던 현상도 메시 재질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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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아프로 피플!


이번에는 겸손함과 집념으로 일군 기술인의 길, (주)영진하이텍 김영호 대표를 만나보겠습니다.




세계 최소형 진동모터를 개발한 연매출 260억의 글로벌 강소기업


  


  김영호 대표가 1997년 설립, 운영하고 있는 (주)영진하이텍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260억 규모의 공장 자동화 장비 및 전자부품 제조기업입니다. 매년 매출액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자. 2013년에는 세계 최소형 진동모터 개발에 성공했는데요. 이 제품은 소니, 파나소닉 등에 판매되어 단일 품목으로 올 상반기에만 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연말에는 HTC,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연내 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사내 기술연구소를 통해 초소형 진동모터의 햅틱 기능을 구현하는 핵심 설계 기술과 고진동화, 저소음화, 슬림화가 가능한 신기술을 개발해 제품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주)영진하이텍이 전자 부품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1년부터입니다. 당시 지식경제부가 공모한 '중소기업 모바일 분야 

국내 신기술 개발을 위한 R&D 지원 사업'에서 김 대표가 제안한 진동 모터 개발 프로젝트가 국책과제로 선정됐습니다. 

이 후 3년여 간 지속된 노력은 기쁨으로 돌아왔는데요. 기술 개발 및 제품 양산에 성공한 것입니다. 개발 기술의 성공적인 사업화까지 이뤄낸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9월 김 대표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이달의 산업기술상을 수여했습니다.


  





△ (주)영진하이텍 김영호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탄탄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토탈솔루션






  97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해 온 공장 자동화 장비의 경우, 백색 가전을 제외한 삼성전자 전 사업부의 생산 공정에 김영호 대표 회사의 장비가 들어있습니다.


  2000년부터는 씨게이트(SEGATE)와 거래하고 있으며, 중국, 베트남, 브라질 등 해외기업에도 자동차 장비를 수출, 지난 해 1500만불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사업 첫 해 4천만 원의 매출로 시작한 그는 17년 만에 회사를 60배 이상의 규모로 키워왔습니다. 경기 부침이 심한 제조 설비 분야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자체적으로 기계 설계부터 제어, 가공, 조립, 유지보수까지 토탈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력 덕분입니다.



 

                                         △ (주)영진하이텍 김영호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또한, 시기적절하게 매출 구조를 다변화시켰던 전략도 한 몫 했습니다. 1997년 , 그는 자신의 장비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차츰 기계 생산까지 가능한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확충해 나갔고, 200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LCD, 하드디스크 등의 자동화 장비도 개발하면서 제품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공정의 키패드 인쇄회로 라우터 장비, 특히, SSD(Solid State Drive) 생산 라인에 들어가는 후공정 장비 개발에 주력하며 자동화 장비의 해외 수출도 적극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 기술전시회에 참가해 신규 바이어 발굴, 기술 동향 파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김영호 대표의 노력은 산업계 및 국가 경제의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큰데요. 공장 자동화 설비와 전자부품을 국산화 개발하고, 국산 장비 및 부품의 해외 수출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무역 수지 적자를 줄였습니다. 이에 중소기업청은 올해 초, (주)영진하이텍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기술 숙련도, 기업 경영도 강점으로 도전 잇는 승부사





 기업 경영에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숙련기술인으로서도 김영호 대표는 늘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서 다음 스텝을 찾았습니다. 구미전자 공고 통신설비과 3학년 재학 시절, 삼성전자에서 12년간 근속하며 제조 기술 및 장비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성장했고, 퇴사 후에는 장비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창업 후에는 회사의 강점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곁가지를 뻗어나가며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숙련기술인으로서 30여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김영호 대표는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성공 비결은 '겸손함'과 '집념'이다.


 "삼인행 필유아사.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이런 생각을 가진 겸손한

사람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또, 기술이든 공부든 자신이 한 번 정한바에 대해 될 때까지 하겠다는 집념이 중요합니다.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원하던 것을 얻게 될 겁니다"


  (주)영진하이텍은 지역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구미 전자 공고, 경운대학교 등에 장학금과 발전기금 등을 지원하고, 지역 내 대학 및 연구 기관과 지속적인 기술 협약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학습병행제도에도 참여, 구미대학교와 한국폴리텍 대학 등과 연계해 프로그램 개발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로 피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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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프로 피플!


비파괴 검사 기술 혁신으로 안전 사회를 구현하는 세명검사기술(주) 제정근 대표를 만나보겠습니다!




비파괴 검사에 빠진 청년, 주독야경을 실천하다


  


  1977년 2월 진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제정근 대표는 부산제철(현 한국철강) 입사, 컨테이너 제작 부문에서 검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품이 정확한 크기로 만들어졌는지 줄자로 확인하는 단순 수치 검사였는데요. 1983년 군복무를 마친 그는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처음 접하게 된 비파괴 검사의 장래성과 매력에 푹빠져 한국검사개발(주)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비파괴검사는 매우 생소한 분야였습니다. 원자력 관련 구조물 공사에서나 사용되는 기술이었죠. 

 하지만 저는 산업이 발전할 수록 대형공사가 늘어나면서, 동시에 비파괴검사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편하고 익숙한 일반 검사 구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생소한 비파괴검사 분야에 뛰어든 그의 판단은 분명 옳았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사고에 이어 일 년 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까지 겹치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 비파괴검사/수요가 확연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비파괴검사 업무는 힘들었습니다. 관련 법령이 강화되어 작업장마다 방사선투괴검사실 RT-Room이 설치된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현장 직원들이 퇴근한 뒤 야간이나 휴일에 검사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제 대표는 고졸 

기술직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실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 창원기능대학 금속학과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면서도 1984년 비파괴검사 기능사 2급 자격 취득에 이어, 창원기능대학 입학지원 요건인 1급 기능사 자격까지 취득(1986년), 1988년 마침내 '주독야경'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 세명검사기술(주) 제정근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비파괴검사 전문기업 세명검사기술(주),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제 대표는 비파괴검사 회사를 차렸지만 많은 우여곡적을 겪어야만 했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비파괴검사 전문기업을 키워 이 분야 최고가 돼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1997년 말 나진검사기술에 들어가,

창원권역의 비파괴검사 업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이후 1999년 말 회사가 부도 위기를 맞자 장비와 인력을 인수, 이듬해 3월에

지금이 세명검사기술(주)을 창업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한 발판이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죠.


 현장에서 15년 이상 쌓아온 경험은 회사를 운영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는데요. 창업 당시 직원 20명으로 17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제 대표는 10년 뒤인 2010년 매출을 105억 3,100만원 규모로 끌어 올렸습니다.


 현장 경험과 함께 그가 꼽는 성공 비결은 정도 경영,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일인 만큼 검사 결과를 놓고 타협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검사 결과가 불량으로 나올 경우 이를 수정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추가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몇몇 제조 업체들은 압력을 넣기도 했지만 제 대표는 언제나 정직하게 검사했습니다. 안전과 관련해서 타협은 없다는 원칙은 업체들과의 

거래 단절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위기일 수록 정공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 결국은 보답을 받았습니다. 철도차량생산 기업인 

현대 로템과 노르웨이의 해양플랜트 업체 NOV 등 더 큰 규모의 업체들과 거래를 맺기 시작한 것. 이 덕분에 지난해 매출

(173억 5,800만원)은 다시 상승가도에 올랐고, 올해 200억원을 넘보고 있습니다.




기본중의 기본, 안전에 충실하여 사람을 지키다





 제 대표는 직원들에 대한 투자 역시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외 발주 제품에 대해 원활한 업무가 기능하려면 ISO(유럽), ASNT(미국) 및 비파괴검사기사(국내) 등 세가지 자격을 갖춰야

하는데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일까, 유럽과 미국의 비파괴검사 자격 기준을 충족하고있는 직원은 현재 전체 270명 중 2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편, 지난 2007년 부설연구소를 설립, 비파괴검사 장비의 국산화 및 자동화 기술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이 노력의

결과로 같은 해 강판 제조업체인 EEW코리아 생산공장의 방사선투과 검사 장비를 자동화 했고, 비파괴검사업무의 효율을 10배이상 향상시켰습니다. 이 공을 인정 받아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지정됨은 물론, 6건의 관련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 대표는 비파괴검사를 통해 안전한 사회 구현에도 이바지하고 있는데요. 2010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조직한 방사선사고지원단(U-REST)에 가입. 국민들을 방사선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고자 경남권역 방사선원사고 지원단장으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고 그 경쟁이 결국은 비용 절감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업체들이 전수검사를 부분검사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비파괴검사 비용을 줄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 수록 기본 중의 기본, 안전에 충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로 피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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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산업인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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