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부품 가공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이룬

(주)대성하이텍 최우각 대표.

과연 그가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일까요?



 

세계 무대 최고를 꿈꾸다



최우각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기술이야말로 개인의 실력으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정직한 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하여 1973년 동광실업고를 졸업한 후, 곧바로 금성통신에 취업해 정밀부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술은 지금의 개발도상국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처음 입사한 회사가 독일 지멘스와의 합자회사여서 독일 엔지니어들과의 교류로 고급 기술을 빨리 배울 수 있었죠. 당시엔 모든 조립, 가공을 사람이 했습니다. 그때 배운 것들을 지금까지도 적용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 기술들이 지금 회사 설립의 밑바탕이 되었지요"


그는 선배들이 기능 경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에 자극을 받아 1975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정밀기기제작 분야에 도전하여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물론 첫 출전에서는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상사에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고, 내부 경합을 거쳐 정밀기기제작 분야에 재도전,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남다른 집념과 도전 정신으로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의식이 있었습니다.


기업가를 꿈꿨던 그는 1983년 첫 시도로 유일정공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젋은 나이에 시작한 첫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첫 사업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지금의 (주)대성하이텍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그는 정밀기계 생산 기술에 대한 믿음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했습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통해 약 200개의 일본기업 리스트를 얻고서 한국 부품을 수입할 의향이 있는 일본 기업담당자들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주)대성하이텍 최우각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다





1995년 4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주)대성하이텍은 꾸준한 사업 확장을 통한 현재 연매출 약 550억원(2014년 기준)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정밀부품 약8,000가지와 모듈, 완성기 등을 OEM 및 ODM방식으로 세계 기업들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주력기기 중 하나인 '자동선반'을 일본 기업인 노무라에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20년간 쌓아 온 공작기계 부품 생산 기술과 

최 대표의 품질우선주의 철학이 노무라의 기업 정신과 들어맞았습니다. 역인수 제안을 받은 것이죠.


해외에서는 Made in korea보다 Made in japan을 신뢰하는 분위기였는데요. 그러나 (주)대성하이텍의 경우, 노무라 인수를 통해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Made in (주)대성하이텍으로의 전환을 이루고자 하는 큰 포부를 가지고 지금도 수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주)대성하이텍은 정밀기계 부품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품 수출에도 뜻을 둔다. (정밀기계부품 수출 48.9%, 완성기 45.4%, 필름기계 3.1%, 기타 2.6%) 2005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10년째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속 가공기 '제로인'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이 외에도 치아 가공기 개발에 성공했는데, 치아본을 뜨지 않고 데이터를 입력해 보철물을 만드는 고가의 장비입니다.


기술의 국산화로 간접적 외화 절감 효과를 내며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평생의 능력이다




최대표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기술인의 길을 걷고자하는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기술은 노후를 보장받는 최고의 길입니다. 일자리가 부족하다지만 현장에는 늘 일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현장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십시오" 




(주)대성하이텍 최우각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그는 (주)대성하이텍 현장 근무자들을 예로 들었는데요.


14년 동안 현장에서 기술 고문으로 일한 78세의 일본 관리자, 한국의 79세의 기술인을 예로 들며 기술은 평생의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주)대성하이텍의 중장기 목표는 향후 10년내로 매출 1조 기업, 다음으로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R&D에 매년 매출의 3~5% 정도를 투자하며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데요. 또한, 현지화에 성공하기 위해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지사에서 현지인을 뽑아 기술을 가르치고있습니다.


기술과 언어, 글로벌 감각을 동시에 습득할 수 있는 과정인데요. 또한, 그는 후배들에게도 눈을 넓히라고 강조합니다. 


기술력을 갖추고 글로벌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는 어떤 방향이든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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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보다 현장을 택하고 학벌보다는 능력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최연소 기술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교사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장을 받았으며, 대학원에 입학해 장학생으로 졸업도 했습니다

능력중심사회로 가는 시작의 불씨를 밝힌 소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소신 있는 진로 선택, 학벌보다는 능력으로!





김진국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이하 창원기공을 찾은 그날, 창원기공 특수산업설비과 학생들은 저마다 기술 연마에 한창이었습니다. 한곳에선 기능경기대회에 나갈 기술영재생들이, 또 다른 실습실에선 기능사시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아침잠도 포기한 채 학교를 찾은 학생들이 모여 기분 좋은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훈훈한 미소를 짓고 선 김진국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김진국 선생님 ⓒ한국산업인력공단




산업설비 전반에 적용되는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답게 기계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달랐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자전거나 TV 등 가전제품을 직접 수리할 정도라고 하는데요. 불과 어제도 집의 현관문 도어락이 고장 나 자신이 고쳤다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 김진국 선생님이기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진학보다는 산업현장으로의 

취업을 선택했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당시에도 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을 못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더러는 졸업 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거나 직업훈련기관에서 기술을 배우는 분도 있었는데, 그럴 바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기술을 배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저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정비공장에 취직해, 낮에는 제가 하고 싶었던 

자동차정비를 하고 밤에는 기술학원을 다녔습니다.”

    

 

재밌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 결과는 1년 만에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 취득으로 돌아왔습니다


자격 취득 후 김진국 선생님은 육군 기술병으로 지원 입대하여 군 복무를 하면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20세에 취득한 기능사 자격 덕분에 기술병에 지원할 수 있었으며, 그 자격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맡게 되어 더 

유익한 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역 후 김진국 선생님은 산업현장에서의 업무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공부하고 기능을 연마하여 산업기사· 기사·기능장·기술사자격증을 두루 취득했습니다. 1999년에는 차량기술사 자격을 획득하며 최연소기술사의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불과 그가 27세일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원임용시험을 통해 중등학교 교원자격증 또한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교원임용시험을 1등으로 합격한 그는 청년제일고등학교 자동차과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인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사로서의 노력과 진심, 결과로 이어지다





기능이란 시행착오를 통한 연습효과의 일정수준인 것 같습니다. 즉 많은 경험과 실험·실습을 통한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기능이 향상되는데, 교사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시행착오는 줄이고 더 빨리, 더 높은 수준의 기능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스스로 현장에서 근무하며 쌓아온 경험과 자격시험에 응시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김진국 선생님

그 간절한 마음이 결국 그를 교단으로 이끌었습니다.

  


 

△김진국 선생님과 학생 ⓒ한국산업인력공단




지금의 그는 창원기공 특수산업설비과의 5년차 교사로서, 말 그대로 산업설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업설비는 광업, 제조업, 조선, 해양플랜트, 전기 가스업, 방송 통신업 등을 영위하기 위하여 설치된 기계장치 및 시설등을 

말하는데, 창원기공에서는 구체적으로 용접, 판금, 배관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김진국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숙련기술뿐만 아니라 국가기술자격과 관련 있는 실기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결국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기능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실력과 정성은 그의 배움을 받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수 많은 제자가 유수의 대기업 및 공기업에 취업했고, 특수산업설비과는 현재 창원기공 6개과 중 

취업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오로지 능력으로 인정받는 능력중심사회를 꿈꾸며




    

기술과 자격증 덕분에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김진국 선생님은 28세가 되던 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한국 폴리텍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현장 경험을 7년 이상 쌓은 후 학교에 가니 이해도 빠르고 응용력도 남달랐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교수님보다 더 잘 아는 부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실습현장 ⓒ한국산업인력공단




김진국 선생님의 활약은 학교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교원 임용 후 직업능력개발 평가위원, 국가기술자격검정 출제위원

전국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차량기술대회 기술위원, 대학의 외래교수 등으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는 일주일에 하루 한국폴리텍대학의 외래교수로 강의를 나갑니다


기술영재생 지도로 방학도 없고, 늘 저녁 늦게 퇴근하곤 하지만 미래의 능력중심사회를 이끌어나갈 학생들을 보면 내 한 몸 

피곤하더라도 더 가르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어 김진국 선생님의 목표는 한결같았습니다. 기능 연마에 더욱 힘써 기술사 자격 하나를 더 취득하고

또 그렇게 쌓은 학문적 지식과 실무능력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욱 깊이 있고 폭넓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


앞으로 교사로서 후배 기능인들이 살아갈 사회를 학력차별 없이

오로지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로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더 빛나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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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만나 볼 아프로 피플은 산업용 공작기계 개발왕! 국산화의 역군!

한맥기연(주) 양정식 대표입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숨은 비결.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함께하시죠~!




25년 기술력으로 공작기계 및 A/S 국산화 시대 연 주역




  양정식 대표가 최초로 개발해 1996년 실용신안으로 등록한 '공작기계용 스핀들(Spindle) 연마기'는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공작기계의 주요 부품 중 하나인 스핀들을 기계에서 분해하지 않고 연마해 다시 기존의 정상적인 정밀도가 나올 수 있도록 복원해주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오래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스핀들은 아예 교체하거나 분해해서 연마한 후 다시 넣어야 했기 때문에 해당 기계를 장시간 사용할 수 없었고, 재조립 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양 대표가 스핀들 연마기를 처음 개발한 90년대 초만 해도 공작기계의 대부분이 수입품이어서 기계를 보수하려면 일본, 독일 등 해외 엔지니어들이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들었습니다. 


△한맥기연(주) 양정식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대기업의 경우, 큰 비용을 들여 사오고도 고장이 나 쓰지 못하고 방치해둔 기계도 여러 대였다고 하는데요. 양 대표는 공작기계 A/S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스핀들 연마기 외에도, 절삭유 필터링 장치 등을 개발해 공작 과정에서의 정밀도를 높이는 등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 왔습니다. 최근 5년간은 공구연삭기, 호브연삭기, 브로치연삭기 등 수입대체 공작기계들을 개발해냈습니다. 양 대표와 같은 숙련기술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90년대만 해도 해외에 의존해야 했던 공작 기계의 상당수가 지금은 국산화 됐다고 합니다. 


    


독자적 보유 기술로 연 매출 백억 대의 강소 기업 일궈



  양 대표가 설립/운영하고 있는 제조기업 한맥기연(주)은 양대표가 단독 발명한 실용 신안 세 건 외에, 현대 자동차와 공동 

발명한 특허 두 건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 같은 독자적 보유 기술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 현대중공업 등 쟁쟁한 대기업에 협력업체로 등록되어 거래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 매출 108억원(2013년 기준) 규모의 내실 있는 강소 기업으로 성장한 한맥기연(주)은 시작 당시만 해도 '한국공장기계서비스'란 이름의 영세한 공작 기계 보수업체였습니다. 창업을 위해 현대중공업을 퇴사한 양 대표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자본금 4,500만원으로 차린 회사였는데요. 처음에는 트럭으로 전국을 돌며 중소 기업의 공작기계를 고쳐주는 일로 시작했지만, '스핀들 연마기'를 개발하면서 사업이 궤도에 올랐습니다. 1996년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법인 등록을 하고, 이듬해 자체 공장을 준공할 수 있었습니다. 




△ 한맥기연(주)ⓒ한국산업인력공단





혹독한 IMF도 이겨낼 수 있게 한 기술과 사람의 힘



  1997년, 공장을 준공하던 중 한맥기연(주)은 IMF를 맞닥뜨렸지만, 남다른 기술력으로 혹독한 경기 불황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세업체였던 당시에도 대기업들과 안정으로 거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IMF 한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IMF를 이겨낸 데에는 함께 해준 직원들의 힘도 컸는데요. 어려운 시절에도 등 돌리지 않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합심해 매일밤 11~12시까지 일한 끝에, 한맥기연(주)은 결국 부도 처리 한 번 하지 않고 IMF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을 우선시하는 양 대표의 경영철학은 이 때 생겨났습니다.


  IMF를 겪은 후 한맥기연(주)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오히려 경기 불황에도 매출 기복이 없는 단단한 체질을 갖추게 됐습니다. 현재 한맥기연(주)은 새로운 공작 기계를 직접 만들고, 설비하는 등의 공작 기계 사업 뿐 아니라 자동차 및 선박 부품 제조업, 금형 가공 사업까지 전개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맥기연(주)에서는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 사택 및 기숙사 제공, 경영 이익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의 혜택을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복지 혜택 외에도 휴게실에 음료, 빵 등 간식을 상시 비치하고, 창립 기념일에는 원하는 브랜드의 고급 등산용품을 선물하는 등 가족 같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직원 자녀들의 고등학교 등록금 지원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이 같은 노력으로 재직근로자 고용유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08년 양 대표는 부산/울산 중소 기업청으로부터 '우수중소기업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한맥기연(주)ⓒ한국산업인력공단



  "직원들이 다 행복해야 됩니다.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하거든요. 인생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회사가 편하고,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고,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진짜 어려울 때도 함께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부 다 만족스러울 순 없겠지만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한맥기연(주)은 현재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 양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폴리텍대학 등 지역 내 학교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울산 지사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산학 연계 사업 참여, 맞춤형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 개발, 지역 인재 채용 등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양 대표는 "구직자와 중소기업 간에 직접 채용이 이뤄지던 기존과 달리, 이 사업을 통해 관계 기관이 인력 양성 및 채용 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근로자나 사측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단 한가지 목표 외길 인생 걸어와




  양 대표가 처음 기계를 접한 것은 가정 형편에 맞춰 부산기계공고 기계과에 진학하면서부터인데요. 당시 부산기계공고는 거의 국비로 운영되는 데다 기숙사가 있고, 취업도 잘 되는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장 추천 없이는 지원조차 여려운 학교였다고 합니다.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일찍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엿장수에게 엿을 사먹는 대신 부서진 라디오 같은 걸 사다가 혼자 고쳐보며 노는 걸 좋아했던 그에게는 적성에도 딱 맞는 진로였습니다.


  부산기계공고 기계과 3학년 시절, 현대자동차에 실습생으로 나오면서 양 대표는 본격적으로 숙련기술인으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 초년병에게 처음부터 원하는 기회와 자리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단순 작업만 하는 부서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부서로 보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부서 이동은 쉽지 않았고, 양 대표는 결국 퇴사 후 원하던 부서로 재입사를 했습니다. 




△한맥기연(주) 양정식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현대자동차 재입사 후 공작기계를 보수하는 보전부에서 얼마 일하지도 못하고 양 대표는 현대중공업으로 적을 옮기게 됐는데요. 2차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그룹사 내 대규모 인력 재편이 실시 됐던 것입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처음부터 원하는 업무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듬질 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배의 프로펠러 부분을 연마하는 부서에 배치된 양 대표는 이번에도 끈질기게 보전부로 보내줄 것을 회사에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후에는 천장 크레인을 고치는 부서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다시 1년간 근무하고 난 끝에 원하던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고집스레 부서 이동을 요청했던 이유는 공작기계에 대한 기술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제 목표는 한 가지였습니다. 언젠가 우리 기술로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를 직접 차리겠다는 것, 현대자동차 실습생으로 현장에 나가보니 대형공작기계부터 특수공작기계까지 전부 일본이나 독일에서 들여온 것 뿐이었어요. 기계 처음 설치하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뿐 아니라 유지 보수하는 일에도 항상 외국에서 엔지니어 슈퍼바이저가 와야 했죠. 그들의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옆에 붙어 보고 배울 수 있는 부서로 가야 했습니다."


 25년간 그 한 목표를 향해 달린 끝에 그는 지금 소박하나마 자신의 꿈을 다 이룬 거 같다고 말합니다. 양 대표는 마지막으로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자신처럼 평생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목표를 찾기를 권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로피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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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기능한국인 아흔두 번째 수상자 김종구 대표는 36년간 주조제철설비분야에 종사해온 숙련기술인 CEO입니다. 김종구 대표가 현재 경영하고 있는 동주산업2013년 기준으로 연매출 약 450억원 규모의 합금주강과 정밀가공, 제철설비제조 전문기업인데요. 기계 가공 공장, 소형 주조공장 등 총 3개의 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11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수입품 대체 가능한 롤 초크 개발로 연 매출 450억 강소기업 일궈



설립 25년차 동주산업(이하 동주산업)의 주력 품목은 제철 설비의 하나인 압연용 롤초크와 코일 슬리브, 프로텍션 라이너 등 합금주강 제품입니다. 특히, 롤 초크 생산에 있어 2009년 지식경제부 주관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선정된 동주산업은 소형부터 최대 60톤의 대형까지 용도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는 설비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동주산업의 롤 초크 제품은 2010년 포스코의 월드 베스트 품목으로도 선정돼 현재까지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외 제철소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동주산업(주)의 모습 ⓒ한국산업인력공단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기술력이 부족하고 장비도 열악했지만꾸준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를 통해 1998년부터는 전문 생산이 가능한 기술력과 시스템을 갖추게 됐고,1999년에는 포스코의 롤 초크 전략구매업체로 선정됐습니다.

 



 

기존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과 짧은 납품기간 내에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제철소의 원가 절감 및 롤 초크의 안정적 공급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2006년 기계공장 증설과 세계일류상품 선정 이후부터는 롤 초크 전문 메이커를 단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세계 시장 개척으로 국내 제철 설비 시장의 한계를 뛰어 넘다



 

동주산업의 전체 매출에서 제철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 정도인데요이 중 수출은 47% 정도로앞으로 60%선까지 키워나갈 계획입니다현재 동주산업은 국내 굴지의 제철 기업 및 관련 중공업 뿐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터키미국일본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세계 유수의 제철 기업 및 제철설비 설계 업체와도 거래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세계 3대 제철 설계 제작사 중 한 곳인 지멘스-브이에이아이(S-VAI)와 단일 프로젝트로 100억 규모의 미국 제철소 롤 초크 제작에 대한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김 대표가 세계 시장에 눈을 처음 돌리게 된 건 2005년 무렵 포스코 주관으로 다른 포스코 공급사 대표들과 함께 중국 등 해외 제철기업에 벤치마킹 연수를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부터입니다.

 



 

 △동주산업(주)의 모습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에 돌아온 김 대표는 기계 공장 증설과 지식경제부 세계일류상품등록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품질 면에서는 이미 세계 일류 제철기업인 포스코에 인증 공급사로 등록돼 있었기 때문에 국가 기관으로부터 추가적으로 인증을 받아 해외 기업들에게 신용 면에서도 신뢰할 만한 회사임을 증명하고자 한 것인데요.

 

 

 

김 대표는 중소기업이지만 품질과 신용에 대한 믿음만 줄 수 있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동주산업의 해외 사업은 2006년 제2공장을 신설하고롤초크 품목으로 지식경제부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 선정되면서부터 날개를 달게 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고로를 갖추고 있는 일관 제철소가 약 90여 개 정도 있는데그 중 우리가 지금 거래하고 있는 기업은 10곳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그만큼 앞으로도 성장할 여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거죠롤 초크에 있어서는 우리 회사가 세계 어느 기업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한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 동안은 제철 설비 수출을 늘려가는 것에 더욱 주력할 예정입니다.”

 

 




 

36년간 주조 및 제철 설비 한 길 걸어 CEO 꿈 이룬 숙련기술인




1978년 현대제철(舊 강원산업입사 후 동주산업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36년간 주조및 제철 설비 전문가로 잔뼈가 굵은 김 대표가 금속 분야를 처음 접한 건 포항제철공고 재학시절 전공으로 금속과를 택하면서부터입니다.

 


 

전공을 통해 기술과 전문지식을 배워 가면서 고교 2학년 때는 주물조형 기능사 자격증을 땄고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현대제철 철강 검사과에 입사했습니다.

 


 

철강 검사과에서 근무하던 중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조 검사과로 부서를 이동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는데요다시 1년 반 후엔 주조생산부서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8년간 근무하다가 퇴직 전 마지막 1년 반 정도는 기술 관리부에서 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재직 중 포항1대학 금속과에 진학일과 학업병역까지 세 가지를 병행한 김 대표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학습병행제 학습근로자들의 까마득한 선배 격이기도 합니다.

 


 

1980현장에서 기술을 숙련해가던 가운데 이론적인 뒷받침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해주는 특별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금속재료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물론 일과 공부군 복무를 한꺼번에 감당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2년 간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냈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마쳤다는 자신감이 평생 자신에게 큰 무기가 됐다고 김 대표는 말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돈만 쫓아가는 것 같아요자신의 적성이나 능력보다 돈을 좇아가니 남들도 다 하려고 하는 일로만 잔뜩 몰려들어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는 거죠.

 

 

 

게다가 스스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도 조금만 어려우면 금방 포기하고 아예 다른 길을 찾는 경우도 너무 많고요시작할 때 어렵더라도 조금만 고생해서 배워두면 평생 그 능력을 써먹으며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있는데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1990, 12년간 근무했던 현대제철에서 퇴사한 건 숙련기술인 CEO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이었습니다대기업에서만 근무해본 그가 중소기업 대표가 되려면 실제 중소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했고창업 준비단계 삼아 동주산업에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들어온 동주산업에서 김 대표는 38세에 임원으로 승진, 98년부터는 직접 경영에 참여하게 됐고, 2004년 대표이사로 선임되기에 이르렀습니다다른 길로 왔지만 결국 경영자의 꿈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동주산업(주) 김종구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그렇다고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IMF 이전 설비 투자로 인하여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임원진 중 막내였던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140여 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이 모두 거리에 나앉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직원들과 똘똘뭉쳐 당시 600% 수준이던 상여금을 모두 반납하고, 2년여 간 절반 수준으로 삭감된 임금을 받으며 버텼습니다. 2001년 IMF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후동주산업은 파죽지세로 성장해나갔고 경영자로서 그의 입지도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입지전적인 이력의 소유자인 김종구 대표가 밝힌 자신의 성공 비결은 첫째명확한 목표 설정 둘째목표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끈질긴 실행 셋째같은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는 것 세 가지입니다.

 




처음의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지금김 대표는 앞으로 다가올 초 고령 사회에 대비해 한 사람의 숙련기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고민하며 새로운 목표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제게는 돈을 벌거나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남은 인생동안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이어나갈지가 더 중요한 숙제로 남았죠제가 가진 숙련기술과 능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또 무엇에 도전해볼지 이것저것 구상해보는 게 요즘 제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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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산업인력공단




기능한국인 아흔 한 번째 수상자 박광민 대표는 국내 점착기술 발전을 선도해온 한국 점착제 제조분야의 1세대 숙련기술인입니다. 박 대표는 점착테이프와 필름에 관한 기술 개발로 80년대 초만 해도 대부분 수입제품을 사용해야 했던 산업용 점착제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는데요. 또한, 90년대 말 평면TV 등장과 함께 수요가 크게 늘어난 광학용 점착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표의 열정 스토리, 아프로 피플에서 지금 시작합니다.




△(주)세일하이텍 박광민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외양간에서 시작한 회사, 매출 186억원의 강소기업으로 키워




1985년 박 대표는 점착테이프와 필름전문 제조기업 세일하이텍을 설립했습니다.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황토벽에 양철지붕을 얹어놓은 우사(牛舍)에서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시작한 세일하이텍은 2013년 매출액 186억원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는데요. 대표 제품은 광학용 점착필름으로, 현재 회사 전체 매출의 5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창업 국내 점착기술이 낙후돼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자제품에 로고를 붙이는 데 쓰는 양면테이프 하나까지 일본이나 미국의 수입품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박 대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을 국내 최초로 개발·판매해 산업계 전반에 걸쳐 원가절감과 품질개선에 기여했습니다.








중소기업은 만능 숙련기술인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박 대표가 창업하자마자 시장의 니즈를 간파한 제품들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점착분야 중소기업에서의 직장생활 경험 덕분이었습니다. 경남공업고 금속과와 인하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당시 점착테이프를 만들던 협성화학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라 대기업 취업도 어렵지 않았지만 일본 유학의 기회를 준다는 얘기를 듣고 협성화학을 선택했는데요. 그 곳에서 박 대표는 8년 간 포장용 테이프, 전기 절연용 테이프, 문구용 스카치테이프 등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박 대표는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주)세일하이텍 임직원 모습 ⓒ한국산업인력공단




직장생활기간 동안, 일본 고분자학회연구소에 가서 기술을 배울 기회도 있었습니다. 유학이라기보다는 해외인턴에 가까웠지만 박 대표는 그 곳에서의 경험이 훗날 큰 자산이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매월 일본인 연구원이 제게 과제를 하나씩 내줬었어요. 그 과제를 풀면서 본격적으로 기술 연구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또 그 때 받은 교재를 번역해 나중에 직원 교육용 자료로 쓰기도 했고요. 한국에는 그런 기술서적이 없었던지라 제가 들여온 번역본이 업계에 돌고 돌아 나중에는 다른 회사 사람들이 그 책을 갖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무명(無名)’의 장벽, 실력으로 뛰어넘다



물론 기술력이나 실무 경험만 가지고 사업이 처음부터 승승장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장의 니즈에 맞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판로를 뚫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국내 시장 판로개척의 어려움을 체감한 박 대표는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품력만 뛰어나다면 시장 진입 문턱이 그리 높지 않은 일본을 먼저 공략했습니다. 일본은 제조업체가 외국 제품을 직접 수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수입업체 등을 통해 거래했기 때문에 먼저 일본 내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박람회 등에 나가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산요전기, 미쓰비시전기, 후지쯔제너럴, 마쓰시타(파나소닉) 등 쟁쟁한 기업들이 세일하이텍 제품을 사용하게 됐고, 알루미늄테이프의 경우 일본 시장 점유율이 한때 70%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일하이텍과 가장 처음 거래를 시작한 대기업은 럭키(LG화학)였는데요. 일본산 점착테이프로 인해 제조 공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장판 제작에 쓰이는 점착테이프는 200이상의 고열을 견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만들어진 장판 전부를 폐기해야 했기 때문인데요. 또한 해외에서 주문해 사용하는 제품인지라 구매자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힘들

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해결이 쉽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런 애로사항을 알게 된 박 대표는 문제가 된 부분을 해결한 응용제품을 개발해 찾아갔습니다. 개발품을 처음부터 믿고 써주지는 않았습니다. 럭키에서는 샘플 수량을 조금씩 늘려 주문하면서 거의 반년 이상 세일하이텍의 제품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던 중 럭키 공장장으로부터 회사에 직접 와서 이 제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브리핑해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박 대표는 제품 제조 공정을 상세히 담은 차트를 만들어 갔고, 세일하이텍이 해당 제품을 지속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공장장에게 설명했습니다. 제안을 마친 그날로 럭키와의 거래가 시작됐습니다





그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도 점착 제품에 한해서는 세일하이텍에 맡기도록 추천할 만큼 단단한 신뢰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국내 최초 광학용 점착필름 개발로 성장 모멘텀 마련



90년대 말, LG전자 쪽에서도 세일하이텍에 기술 개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요청한 제품이 바로 현재 세일하이텍의 주력 제품이 된 광학용 점착필름이었는데요. 평면 브라운관의 등장과 함께 그 분야를 선도하던 LG, 삼성 등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이 제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주)세일하이텍 ⓒ한국산업인력공단



당시 이미 건축 내외장재 보호필름 등으로 국내 산업용 점착 제품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세일하이텍은 좀 더 고도화된 광학용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광학용 점착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박 대표는 사업 초창기부터 줄곧 시장 수요와 트렌드에 맞춘 기술 개발에 비용과 시간, 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일하이텍은 현재 총 12개의 특허와 2개의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세일하이텍에는 8명의 개발인력이 있으며, 박 대표 자신도 대표이사 외에 유일하게 맡고 있는 자리가 연구소장일 만큼 기술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신규 아이템 발굴을 위해 박 대표는 매년 5회 이상 해외의 기술박람회나 전시회 등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최근 세일하이텍은 미국의 한 나노소재 기업의 의뢰에 따라 신규 아이템인 고기능성 투명전극 시트를 개발해냈습니다. 16개월 만에 개발에 성공한 고기능성 투명전극 시트는 향후 광학용 보호필름의 뒤를 이을 세일하이텍의 주력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고기능성 투명전극 시트는 한 마디로 전기가 통하는 필름인데요. 전자파를 차단하는 용도나 보온, 발열 등의 효과를 내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후면 유리와 달리 열선을 넣을 수 없는 전면 유리에 이 고기능성 투명전극 시트를 적용하면, 날씨가 추워져 창에 성에가 낄 때 열선 없이도 유리를 녹일 수 있게 됩니다.







국내 최초 광학용 점착필름 개발로 성장 모멘텀 마련






△(주)세일하이텍 박광민 대표 ⓒ한국산업인력공단




점착 제품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세일하이텍은 이제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숙련기술인으로서의 첫 목표를 거의 이룬 박 대표가 새롭게 세운 목표는 엔지니어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는 것인데요



엔지니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개인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국가가 잘 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그 동안 자신이 일궈온 숙련기술과 노하우를 나누고, 숙련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업과 개인 차원에서 노력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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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산업인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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