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및 장소 : 2016. 3. 25(금) 9:30, 서울남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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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 미국 LA, 뉴욕 해외취업 현장탐방

 

일본 취업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원문보기 : http://webzine.hrdkorea.or.kr/section/webzine/view?id=3471&page=1


여태껏 미국 땅 한 번 밟아본 적 없던 내가 일본 도쿄와 미국 LA, 뉴욕 현지 점검 출장을 다녀왔다.
공단에 입사해 해외취업연수팀에서 국내 청년들의 미국 취업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선무당이 사람 잡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었던 날들을 뒤로 하고 5박 7일간 출장길에 올랐다.
그간 해외취업 지원자들의 많은 서류들을 검토하고, 나보다 많은 월급을 받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취업자를 보면서 ‘나도 여기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번 출장길에서 만난 우리 청년들과 지원기관 관계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바탕으로 일본과 미국 같은 글로벌 선진국의 해외취업 실정(말 그대로 실정이다!)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해외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지면으로 옮겨본다.

글. 홍의경 공단 해외취업연수팀 대리



일본 취업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일본은 아베노믹스 정책과 2020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으로 경기 활성화 노선을 걷고 있다. 유효 구인 비율(구인 인원 대비 구직 기업수) 1.3으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일본은 이전의 소극적인 국제 인력 채용 경향을 벗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특히 우리 한국인의 우수한 언어구사 능력과 근성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에, 현지 IT업계는 꾸준히 한국인을 채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동안 그 규모는 지속 증가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 현지기업의 이러한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뿌리 깊은 반일 감정과 방사능 오염 및 지진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현지취업에 성공한 우리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반한 감정으로 차별을 당하지는 않나요?”, “방사능 오염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죠?”라는 질문 등이오고갈 정도였으니 해외취업 희망자들의 선입견 아닌 선입견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취업자들은 유사한 외양과 아시아권 문화덕분에 이질감 없이 일본에 적응했으며 승진 등 인사에서 현지인과의 차별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IT업계 특성상 야근이 있는 편이나 야근수당을 철저히 지급받고 있고 사생활과 개인시간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에 만족하기 때문에 정착의지도 높은 편이다. 이외에도 일본은 근무환경이 안정적이고 뛰어나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직원복지나 임금격차가 크지 않아 중소기업도 직원에게 교통비와 기숙사를 지원하는 곳이 많다. 나이 어린 신졸자(신규대졸자)를 선호하지만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일단 취업하면 고용형태가 안정적이다. 또한 육아휴직 후 일터 복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여성의 경력단절도 없는 편이다.




미국 취업 ‘손 닿을 듯 먼 곳에’
미국은 우리 청년들의 해외취업 선호도가 단연 높은 국가다. 연수 담당자인 나까지도 ‘미국’이라는 국가를 담당하게 된 것만으로 설렜을 정도였으니…. 연수 지원자들은 하나같이 지금껏 배워왔던 영어를 활용하고 실력 향상도 꾀할 수 있는 점, 자유로운 기업문화, 익숙한 정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동경 등을 이유로 미국 취업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의 동경과 달리 실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선 자국민 보호정책 때문에 비자를 취득하는 게 쉽지 않다. 모든 연수생들은 문화교류비자인 J-1비자를 발급받아 근무해야 하고 법적으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담당할 수 없기때문에, 대부분 최저시급을 받으며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마저도 기한이 보통 1년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로 제한돼 있고, 연장도 불가능하다.

비자 수속 절차도 복잡하다. 고용주 인터뷰는 물론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하는 스폰서 기관 인터뷰와 대사관 인터뷰까지 이 모두를 통과해야만 비자가 발급된다. 수속비도 평균 500만 원으로 높게 책정돼 있다.

미국 현지에 취업한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할지라도 취업비자인 H-1B비자를 발급받는 건 더 어렵고 복잡하다. 취업처에서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여 수속절차를 밟아야 하고, 비자신청을 하더라도 쿼터 제한(연간 8만 5천 개)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큰 운도 따라야 하는데 작년의 경우 3: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또한 한국 청년들은 주로 한인기업에 취업하기 때문에 업무 중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하거나, 한국형 야근을 하기도 한다. 미국 현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비원어민으로서 느끼는 언어장벽과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다. 또한 귀국 후 경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드물어, 단순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면, 미국 취업의 녹녹치 않은 현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취업 = 차선책이 아닌 선택과 집중!
해외취업 연수생 선정 업무를 하다보면 국내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취업을 준비한다는 지원자를 왕왕 만나곤 한다. 대학시절 막연하게나마 ‘나도 중국에서 한국어 강사나 해볼까?’ 했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실은 겪을수록 어려운 게 해외취업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목표, 도전정신, 열정이 없는 상태에서 막연한 기대감과 동경심만으로 중무장한 지원자들에게는 해외취업의 실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어렵고 힘든 온갖 사례들을 제시하며 ‘너 그래도 해외취업 할 테냐’고 시험하곤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해외취업지원을 해야 할까? 인턴시절 때부터 고민해 왔지만 좀처럼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했었다. 현지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갓 졸업해 경력이 없는데다 기껏 일을 가르쳐 놓으니 1년 만에 귀국하는 외국사람을 선뜻 채용하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출장을 통해 그 묘수를 찾았다. 현지 취업처나 간담회에서 만난 취업자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들은 언어 전공자나 관련 직무 전공자로서 꾸준히 해외취업에 관심을 가져왔거나, 해외취업에 관심을 가지게 될 만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연봉 3000만 원을 받고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최정희 씨는 국내 동종 업계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K-Move스쿨을 통해 영어능력을 보완하여 조기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국내기업 재직 때부터 해외취업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으며, 현재도 정식 취업비자 전환을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영남전문대학 출신 김현재 씨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해외취업 관련 특강을 듣고 일본에서도 인정되는 자격증을 취득하여 졸업과 동시에 해외취업의 기회를 잡았다.

 
두 번째, 그들은 남들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훨씬 더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며 도전적인 경향을 보인다. 현지 IT업계에서 한국인 1호로 근무하고 있는 진세연 씨는 국내 굴지의 여행사나 대기업에 합격하고도 남들과 차별화된 경력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해외취업을 선택했다. 취업에 성공한 이후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신규 고객을 유치했고 현재는 회사에서 그를 롤 모델 삼아 매년 한국인을 채용할 만큼 뛰어난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글로벌 번역업체에서 근무하는 이민선 씨는 ‘해외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어디든 신입사원은 힘들죠.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웃으며 당차게 얘기한다.

미국연수에 대한 어려움을 안내받고 ‘이렇게 열악한 해외취업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과는 출발부터 마음가짐이 다르니 결실이 다름은 자명한 일일 터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해외취업에 성공하는 이들은 국내취업의 차선책으로 해외취업을 준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국내취업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인
것이다.

1년 전 공단 입사 면접 대기실에서 떨고 있을 때 인재개발팀의 한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Best Person’이 아니라 ‘Right Person’을 뽑는다고. 해외취업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있다 해도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내가 좋아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일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감과 열정, 도전정신이 있을 때 성공적인 해외취업의 길은 열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번 출장길에서 확인한 것은 그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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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人터뷰 - 허진규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원문보기 : http://webzine.hrdkorea.or.kr/section/webzine/view?id=3437&page=1

 

 

소년은 궁금했다.
어떻게 흙으로 저렇게 커다랗고 다부진 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옹기에 발을 들인 건 그때부터였다.
숱한 역경을 겪으며 방황하던 날들도 있었지만 어느덧 그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 했던가. 지천명(知天命)을 지나는 그는 이제 옹기가 자신의 길임을 안다.
글. 김혜민 / 사진. 이승훈



고집불통 겁 없는 소년,
옹기장의 길로 들어서다


흙을 반죽하여 물레를 돌려가며 옹기 모양을 잡고 잘 다듬어 건조시킨 후 다시 유약을 발라 1200도씨의 고온에서 구워내기까지. 옹기는 여전히 그 속에 흙 기운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호흡한다.

우리조상들의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해 생명을 부여받은 그릇, 옹기.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피부와 머리카락 색 다른 외국인들마저 이 생명력 넘치는 그릇에 매혹된 까닭이다. 그리고 올해로 벌써 36년째, 기나긴 세월을 옹기와 더불어 살아온 허진규 옹기장은 그 그릇의 우수성을 알리는 접점에 서있는, 살아있는 문화 그 자체다.

지난 몇 년간 미국, 호주, 유럽 등을 순회하며 숱하게 옹기 제작 시연을 해온 그는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로서 울주군에 위치한 외고산옹기마을에 터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옹기집성촌으로 유명한 여기가 바로 제 고향입니다. 아버지 역시 평생을 옹기장으로 활동하셨지요. 태어난 환경부터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항아리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자랐으니 자연스레 옹기를 배우겠다고 선언하게 된 거지요.”

겁도 없이 옹기의 세계에 덜컥 발을 들이려는 아들을 두고 부모는 필사적으로 반대했단다. 그 자신이 옹기장이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외롭고 고되며 힘든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 터.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아들의 의지에 결국 부모도 항복을 선언했다고. 이후 그는 중학교 진학까지 포기해가며 오로지 옹기 하나에만 전념하기에 이른다.

“옹기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배우기 힘들어요. 최소 15년 정도는 배워야 제대로 옹기를 만드는 기능장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언뜻 보기엔 재미있어 보여도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테크닉 발전은 더욱 말할 필요가 없겠죠. 그래도 계속 했습니다.

때로는 자투리 시간을 내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도자물레까지 스스로 배워나갔죠. 나중엔 제 본연의 기술과 더해져 굉장히 재미있는 기술이 나오더라고요. 옹기 제작시연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고요. 스스로에게 굉장히 뿌듯했죠.”

 

 

 

옹기가 삶이 된 청년,
시련도 굳건히 받아들이다

사실 허진규 옹기장이 기술을 연마할 무렵은 이미 플라스틱 용기가 유통되기 시작해 옹기가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던 때였다. 때문에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옹기업 종사자 수가 300여 명 남짓할 정도로 영화를 누리던 마을은 이제 고작해야 30명, 그나마도 기능을 가진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가 됐다.

그러다보니 옹기를 매개로 맺어온 선배들과의 나이 차이도 크다. 그와 선배들의 평균 나이차는 약 10~15년 이상. 그 커다란 틈이 아쉬워선지 그의 선배들은 유난히도 살뜰히 그를 챙긴다.

“35살 때였나? 무릎이 퇴행성이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계속 이렇게 무릎을 쓰면 앞으로 못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충격적이었죠. 지금이야 흙반죽이며 옹기성형에 기계의 도움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제 힘으로 해내야 했으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겁니다. 제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오랜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옹기는 그의 삶 자체라는 것. 내가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옹기 맥이 끊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 걷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후배양성을 할 때까지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결정지었단다.

“지금은 학교에 나가서 옹기수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졸업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 한해 마을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고요. 그리고 여기 작업실에서 수련중인 학생이 바로 저의 공식적인 무형문화재 전수자입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건만 몇 년째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수련에 임하는 수제자가 내심 기특하기만 한 허진규 옹기장.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제자와 함께 실용옹기 제작에 힘쓰는 것이다.

“옹기는 예부터 항상 생활에 밀접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창고에서는 곡식저장용기로, 부엌에서는 각종 장이며 찬의 저장용기로 또는 농사용품이나 문방사우로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죠. 저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어울리는 옹기를 만들고 싶어요. 인테리어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살아있는 문화재,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옹기장의 길을 선택한 허진규 옹기장. 그동안 그는 다사다난한 삶의 얼굴을 마주하며 더욱 단단해져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기억하는 가장 보람되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 2008년, 미국인들 앞에서 옹기 제작 시연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도자협회모임인 엔시카(NCECA)에서 여는 행사였는데 미국의 도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관해 연구분석하는 명망 있는 행사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매번 전 세계의 도예작가를 2명씩 선정해 행사에 초청하는데 거기에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초대된 것입니다.”

이후 그는 우리 옹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약 30여 개국을 순방하며 자진하여 국위선양을 해오고 있다. 건강이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경이로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서면 그 순간은 몸이 아픈 것도 절로 잊혀진다고. 옹기를 만드는 기술 그 자체를 높이 사는 외국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든단다.

막상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옹기를 그저 김치를 담는 저장그릇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이유일 터다. 그는 몇 년 전 열린 기능경기대회에서 출제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를 덧붙이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당시 울산에 지역특성화라고 해서 ‘옹기’부문도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죠. 그때 출제위원을 하며 느꼈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렸던 도면을 꺼내어 보곤 하니까요. 기능경기대회 종목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분명 그 기술력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배우는 이가 없어 아쉽게도 5년 만에 종목을 접어야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는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기술을 전문화시켜 그 분야의 장인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뜻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옹기. 그 속에서 우리네 고유의 음식인 된장, 간장, 김치 등은 맛있는 발효를 시작한다.

소성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숨구멍 사이로 공기가 드나들며 미생물의 활동이 조절되는 것이다. 그뿐이랴. 쌀, 보리 등의 곡식을 담으면 다음 해까지 썩지 않는다. 고온의 가마 안에서 나무가 타며 생기는 연기가 옹기의 안과 밖을 휘감으며 방부성 물질을 덧입히는 덕분이다.

이렇게 수세기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자랑스러운 우리문화 ‘옹기’를 세월과 함께 고이 지켜낸 무형문화재 허진규 옹기장. 그는 오늘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우직이 앉아 옹기의 미래를 빚어나가는 데에 여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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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최초 NCS 도입, 스펙초월 채용해도 우수인재 확보 문제없어 국내 연구기관에 취업하려면 학벌, 학위 등 이른바 스펙이 짱짱해야 한다는 게 속설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최근 이런 사회적 통념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최초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의 능력중심채용을 실시하여 능력중심사회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사업 : 국내외 육상·해저 지질조사, 지하자원 탐사·개발 등
직원 수 : 457명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구성원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연구직(313명)의 경우 열에 아홉이 박사학위 소지자이고, 평균연령은 45세가 넘는다. 기술직, 행정직 등 전체 직원으로 시야를 넓혀 봐도 평균연령(44세)은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원이 단지 직원 평균연령을 낮추려고 NCS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배경과 목적이 존재하는데, 무엇보다도 연구원의 인재상(미래를 선도하는 창의적 인재)에 부합하는 직원을 확보하려면 학위나 학벌 중심이 아닌 능력중심 인재채용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크게 작용했다. 지질자원 분야 융복합 연구를 위해서는 다학제적 우수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툴(tool)이 절실했던 것이다.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능력중심 채용 및 인사제도에 있어 공공기관의 모범이 되겠다는 목표도 한몫했다.


연구기관도
NCS 적용
얼마든지 가능


NCS 도입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연구기관에서는 NCS 모듈 적용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일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이는 구성원 간 충분한 논의와 소통, 인사부서의 강력한 의지와 경영진 설득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NCS 모듈 역시 NCS 도입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 채용과정에서는 학력·학위(박 사) 중심 등 보수적인 채용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공사나 공단 등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채용규모가 적고, 인사담당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구원의 이 같은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NCS 현황을 분석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난 2014년 여름에는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핵심 이슈 사례를 수집하고, 타 기관을 벤치마킹하는 동시에 NCS 유사사례를 꼼꼼히 검토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고용노동부(한국산업인력공단)의 공공기관 대상 NCS 활용지원사업을 신청하여 이내 선정되기에 이른다.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제도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NCS 채용제도 브레인스토밍, 경영진 및 실무부서장 표적집단면접(FGI), 설문조사 등을 실시했다. 올(2015년) 2월에는 무기계약직 전환 절차에 NCS 기반 채용제도인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후 NCS 직업기초능력평가 필기시험 및 면접관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NCS 면접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으로 사전 준비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연구원은 지난 6월과 10월 NCS 기반 채용을 통해 13명의 신규 직원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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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및 장소  : 2016.2.25(목) 15:00,  코엑스 VIP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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