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합니다. 그러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체계적인 금융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으로서 직장생활을 경험하고 월급을 손에 쥐면서부터는 경제적으로 홀로서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뎌야 하죠. 사회에서 경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재테크 비법,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1. 내 인생 재무계획표를 작성하라





인생 재무계획표 작성이 기본 ⓒ김수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재무계획표를 작성해보는 것입니다. 높은 수익을 얻는 재테크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입니다. 돈을 많이 모을수록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본인의 수준과 여건을 감안하여 생애 주기에 맞는 합리적인 수준의 재무목표(결혼자금, 교육자금, 주택자금, 노후자금 등)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혼자 시도하는 것이 막막하다면 금융회사를 방문하여 전문가와 함께 100세까지 재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인생의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2.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활용하라







스마트폰 가계부 어플 쓰기 ⓒ김수진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고도 스마트한 소비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다. 가계부 어플리케이션(편한 가계부, 똑똑 가계부 등)을 활용하여 가계부를 작성해보는 것이죠. 손으로 직접 작성하는 것도 좋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그마저 번거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스마트폰 가계부를 활용해보는 게 좋겠죠. 매달 자신의 수입과 지출, 고정지출과 변동지출의 현황을 파악하고 씀씀이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투자로 10%의 수익률을 올리는 것보다 원금에서 10%를 아끼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3. 자동차‧기호식품 지출을 돌아보라




사회초년생에게 자동차는 돈 먹는 하마와도 같습니다. 자동차 자체의 가격도 문제지만 고정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점 때문이죠.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호식품에 대한 자투리 지출을 조절한다면 향후 엄청난 자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세 직장인이 매일 4,500원짜리 브랜드커피 한잔을 줄여 5%로 계속 투자를 하는 경우 60세가 되면 총 1억 1,622만원을 모을 수 있으며 30년간 매달 63만 원씩의 연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대비는 어렵지만 어떠한 소비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이처럼 의외의 여유자금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죠.





4.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라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김수진




소비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신용카드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때때로 과소비와 충동구매의 원인이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결국 신용카드는 쓰기는 좋으나 모으기는 어려운 도구이므로 돈을 모으는 단계에서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크카드는 통장 잔액 범위 내에서 소비함으로써 과소비를 줄일 수 있고, 카드빚에 대한 우려 없이 계획적인 소비가 가능하죠. 또한, 체크카드의 경우 연말정산을 할 때에 소득공제율이 신용카드의 두 배인 30%로 더 많은 절세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5. 단기적인 목표를 끝까지 성취해보라





사회초년생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일에 익숙치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기간을 3년 이내의 단기로 정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표기간이 짧은 만큼 저축에 우선순위를 두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습관을 길러서 최대한의 종잣돈을 만들어봅니다. 그리고 돈을 넣기 시작한 상품은 끝까지 채우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한 번 중도해지 해본 사람은 다음에도 쉽게 해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재테크에도 해당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죠.






6. 금융회사를 통해 금융지식을 얻어라






금융지식 쌓기 ⓒ김수진




요즘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금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절세상품입니다. 본인의 투자성향에 맞는 연금저축계좌상품 등의 소득공제상품과 주택청약을 위한 주택청약종합저축부터 가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변화하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와 기초적인 금융지식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금융회사를 통해 금융지식을 쌓는 것도 방법이겠죠. 한 달에 한 번은 금융회사를 방문하여 최신 금융정보나 상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일년에 한 번은 나의 재무목표에 맞게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점검해봅니다. 이를 통해 절약에서 저축과 투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기준금리 1% 시대의 새로운 길에 접어들면서 은행의 적금이나 예금에만 안전하게 저축하고 기다리는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이제는 절약에서 저축과 투자로의 적극적인 마인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죠. 하지만, 사회초년생이 투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투자보다 절약을 통한 저축이 먼저라는 점입니다. 스스로의 소비습관을 파악하여 돈을 절약한만큼 원금에 고스란히 투자되므로 가장 투자수익률이 좋은 재테크 0순위인 것입니다. 절약과 저축을 바탕으로 재테크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 보세요. 이러한 습관을 바탕으로 재테크를 이해한다면 누구나 경제적인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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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 햇볕이 자취를 감추고 서늘한 기운만 완연히 맴도는 초겨울의 경계로 들어섰습니다. 마음 한편으로 왠지 모를 허전함이 함께 찾아드는데요, 이런 때라면 목적지가 어디든 그저 훌훌 떠나고 싶어집니다. 파주는 그런 당신에게 적격인 도시입니다. 책과 예술로 뒤덮여 온종일 넘칠 정도로 마음의 양식을 꼭꼭 눌러 담을 수 있는 곳이죠. 초겨울을 만끽하는 풍성한 여행길에 올라봅니다.

 

 

 


앎의 기쁨을 더해주는 사색의 공간,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 내부 ⓒ파주시청, 김혜민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펼쳐진 웅장한 건축단지 집합체. 파주출판도시를 찾은 사람들의 첫인상입니다. 내부에 은석교, 다산교 등 총 6개의 다리가 교차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인 만큼, 여행의 시작은 무조건 지도부터 챙기는 것이 필수죠. 파주출판단지는 출판유통구조의 현대화를 꿈꾸는 출판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지난 1989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출판사뿐만 아니라 출판업과 관련된 인쇄사, 지류회사, 출판유통센터 등이 동고동락하고 있어요. 친환경 도시를 지향함에 따라 건축·환경예술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든든한 역할도 수행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시각, 좋은 글, 좋은 디자인이 나오고 그것이 곧바른 책을 펴내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기반 되었으리라 봅니다.

 

 

출판도시 내부에는 책방, 박물관, 미술관 등이 밀집해있어, 방문한 사람들의 감성을 한껏 충전해줍니다. 길이 총 3.1km에 서가의 높이가 무려 8m에 달하는 ‘지혜의 숲’은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독서문화공간으로, 총 50만 권의 기증도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벗어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이 곳은 인문학 콘서트와 북콘서트 등을 개최하며 낭만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다채롭죠. 피노키오와 관련한 작품을 전시한 피노키오 박물관, 놀이터와 공연장, 어린이 그림책 등이 구비된 어린이 출판사, 매년 5월이면 이 일대에서 열리는 어린이책잔치까지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과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햇볕이 따스한 날에는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소풍 온 듯한 기분으로 독서하는 것도 출판도시의 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출판도시는 책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특유의 넉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예술가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광장, 헤이리예술마을


 

 

 

 


헤이리예술마을 ⓒ파주시청, 김혜민

 

 

 

파주에서는 프로방스마을, 영어마을 등 다채로운 테마의 관광지가 녹음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자연이 주는 안락함 속에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헤이리예술마을은 주말이면 나들이객들로 유독 북적이죠.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지던 예술을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대중과 함께 소통하는 공간으로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헤이리예술마을은 미술가,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약 380여 명의 예술가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꿈꾸며 시작된 공간입니다. 이렇게 낭만적인 철학에 따라, 마을 내에 들어선 모던한 건축물들은 모두 병풍처럼 드넓게 펼쳐진 산을 가리지 않도록 낮게 지어져 있습니다. 바라보는 눈길이 한결 더 편안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마을을 휘감아 도는 호수정원은 생태마을을 꿈꾸는 이 곳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핵심입니다. 봄이면 오색빛깔 꽃들이, 가을이면 금빛으로 일렁이는 갈대들이 각자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산책길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느티마을, 참나무골, 솔마을 등 총 8개의 마을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마을 내에는 갤러리, 박물관, 소극장, 아트샵 등 예술의 기운이 물씬한 볼거리가 다양해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더욱 바쁘게 만듭니다. 특히 건축, 추억, 장난감, 악기, 커피, 근현대사 등을 주제로 만들어진 이색
박물관들은 빠뜨려서는 안 될 이곳만의 묘미입니다.

 

 

 

 

헤이리예술마을 ⓒ파주시청, 김혜민

 

 

 

 

 

아픈 역사와의 화해를 꿈꾸는 평원, 임진각


 

 

 

 임진각파주시청, 김혜민

 

 

 

가슴 미어지는 민족상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 줄기 강. 남과 북 사이의 벌어진 간극을 좁히고자 오늘도 굽이굽이 강물을 달리는 임진강 주변으로는 참혹했던 6.25전쟁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임진각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전쟁과 함께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간 이들을 기리고, 다시는 같은 민족끼리 총알을 겨누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곳곳을 거닐다 보면 파괴된 경의선 철교를 비롯하여 ‘철마는 달리고 싶다’ 열차, 자유의 다리, 망배단, 땅굴 등 그 날의 흔적이

게 배인 유물과 유적들이 하나의 군락을 형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 때 그 시간으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죠. 특히 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해 교각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자유의 다리와 수천 개의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기차 앞으로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해 멍하니 북녘 땅을 지켜보는 어르신들이 많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듭니다. 망향의 회한이 서려 눈물 훔치는 이들의 마음은 서슬 퍼런 철조망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들과 대조되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그 곁으로 광활한 잔디언덕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화해와 상생,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지난 2005년 조성된 평화누리공원이죠.
푸른 하늘과 초록 잔디 그리고 그 사이로 바람을 타고 빙빙 돌아가는 알록달록한 바람개비의 세찬 날개 짓까지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하는 이 곳은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도 소문난 곳입니다. 너른 언덕이 조성되어 있어 주말이면 피크닉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공간. 공원 둘레 길을 산책하고 있으면 서로 마주하지 않고 올곧이 한 방향만 응시하고 있는 거인 4명의 조형물이 눈에 띕니다. 서로를 나란히 따르는 그 모습이 유난히 정겹게 다가오는 곳은 북녘을 마주한 땅이기 때문일까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파주시청,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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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책 쓰기 코칭법 ⓒ 김수진 일러스트레이터

 

 

 

 

 

지금은 글 잘 쓰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업무의 40%, 매니저 업무의 50%가 글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글쓰기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업무에서 필수자격인 셈입니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준비하는 시대랍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키보드를 부지런히 두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떤 책을 쓸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고민합니다. 어떤 책을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콘셉트를 정해놓고 시작하면 훨씬 수월하게 글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개인의 일기가 아닌 책을 쓰기 위해서 꿈과 비전, 관심 분야, 직업, 콘텐츠 비교분석을 토대로 나만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방법,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 김수진 일러스트레이터


 

 

 


꿈과 비전을 발견하라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꿈과 비전을 잊고 삽니다. 책을 쓰고자 한다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겠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인생의 목표와 실현방식이 다릅니다. 내가 주로 어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이야깃거리에 흥미를 느끼며 어떤 책부터 집어들게 되는지 등 나의 일상부터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첫 시도가 어렵다면 자신이 바라는 꿈과 비전을 먼저 실현한 사람들을 연구 분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른 이들의 책을 연구 분석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해보세요. 1) 술술 읽히는지 2) 재미가 있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지 3) 내용 속의 사례가 콘셉트와 부합되는지 4)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와 닿는지 등을 말이죠.





관심분야를 공략하라

 


 



관심분야보다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1인 창업이 답이다>를 펴낸 이선영 저자가 있는데요, 그녀의 관심분야는‘ 1인 창업’이었습니다. 그녀는 치과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관심분야인‘ 1인 창업’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간의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병원 개업 및 경영 등을 도와주는 컨설팅 회사 ‘Change Young company’를 1인 창업했죠. 그리고는 창업 후 3년여 만에 직장 월급의 4~5배에 이르는 수익을 낼만큼‘ 1인 기업가’로 탄탄히 자리매김했습니다. 자신의 전문분야(치위생사)를 살려 일반인, 임산부, 학생들에게 구강 보건 및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최근에는 기업과 대학 등에서‘ 1인 창업 노하우’를 전달하는 강사로까지 활동하고 있답니다. 이 모든 것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관심분야를 제대로 공부하면서 책을 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직장의 업무를 콘텐츠로 활용하라

 


 



지금 직장에서 맡고 있는 업무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책 쓰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업무와 글쓰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 가장 잘하는 일에 대해 정보 수집을 습관화 해보세요. 직장을 통해 내공을 쌓은 분야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콘텐츠와 사례를 접목할 수 있습니다. <비서처럼 일하라>의 저자 조관일 씨는 ‘어떻게 하면 채무자들을 잘 설득해서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부터 직원들을 상대로 고객 응대에 관한 강의를 하게 됐고 첫 책인 <손님 잘 좀 모십시다>를 출간했습니다. 직장의 업무를 책 쓰기 콘텐츠로 활용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 쓰는 일이기에 횡설수설하지 않고 힘 있고 설득력 있게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들 수 있습니다. 업무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 김수진 일러스트레이터

 

 



콘텐츠 색깔을 달리 하라

 


 



책으로 출간되는 콘텐츠는 반복적입니다. 포화상태인 출판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고자 한다면 다소 무리가 있겠죠. 중요한 것은 콘텐츠는 돌고 돌아도 색깔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콘텐츠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경쟁도서 분석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의 참고도서와 경쟁도서를 연구 분석하면서, 책들이 같은 콘텐츠를 갖고 있더라도 목차 구성과 서론, 본론, 결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본문 속에 어떤 사례들을 풀어냈는지 등을 눈여겨보면 원고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의 1) 핵심 독자층이 누구인지 2) 핵심 콘셉트는 어떤 것인지 3) 이 책이 갖는 경쟁력이나 가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분석하다 보면 앞으로 어떻게 나만의 콘텐츠를 풀어나갈 것인지와 어떤 출간 계획을 세울 것인지가 명확해집니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 눈부신 인생을 갈망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런 인생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합니다. 그 초석을 다지는 일은 책 쓰기에서 비롯됩니다. 책 읽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직접 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여러 가지 기회들이 생기고 그 기회를 통해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직장인 분들! 생존 독서에서 이제는 생존 글쓰기로 전환해보시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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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낭만 발레 시대, 러시아에서 전성기를 맞은 제2의 고전 발레 시대 그리고 형식을 뛰어 넘어 미국까지 넘어온 현대 발레 시대입니다. 발레의 시기마다 시대를 대표하는 숙명의 라이벌, 천상의 파트너들이 있었는데요, 1830년대 낭만발레 시대에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큰 주목을 받은 마리 탈리오니와 파니 엘슬러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 좌를 평정했던 그들의 무대 위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고결한 공기의 요정,  마리 탈리오니


 

 

 

 

▲ 마리 탈리오니(1804-1884) ⓒ김수진

 

 

 

 

마리 탈리오니(1804-1884)가 오페라 좌에 등장한 것은 1827년 7월 23일이었습니다. 큰 키에 늘씬한, 부러질 것 같은 팔다리의 마리 탈리오니가 무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순간, 극장은 흥분과 긴장에 휩싸였습니다. 낭만 발레 시대 대스타의 등장이었죠. 이후 1823년 마리 탈리오니는 그녀의 아버지인 필립포 탈리오니가 안무한 <라 실피드>를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춤을 선보입니다.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그린 작품에서 그녀는 모든 뽀앙트 기법(발끝으로 서는 동작)을 완전히 마스터 했고, 뽀앙트 기법이 포함된 새로운 댄스 양식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날 밤 객석에 있던 영국 귀족 여성은 그 감상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춤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고 부드럽고 거칠지 않으며 최소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 이 매력적인 사도의 춤에는 정취가 있으며 그 덕에 그녀와 같은 같은 여성들의 방종한 스타일을 흔들 듯 능가해, 춤의 개혁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스타일은 낭만주의 시대, 초현실적인 세계를 꿈꾸는 관객들에게 환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 실피드>를 통해 그녀는 공기의 요정으로 떠올랐으며, 여성 발레리나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죠. 그녀는 날아가듯 춤을 추고 지상에 내리려다 다시 뛰어오르는 우아하고 절제된 춤사위로, 순결, 고고함, 천상의 이미지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을 추구하려는 관객들의 기대와 상상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마리 탈리오니는 까다롭고 제멋대로인 발레리나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이러한 신경질적인 면모로 인해 다시 오페라 좌의 지배인 듀폰셀(베론 이후)은 그녀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리하여 마리 탈리오니는 1837년 4월 22일, 데뷔 37년 만에 오페라 좌에서의 이별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언론은 "발트 해의 얼어버릴 것 같은 바람 속에서 이 아름다운 나비를 어떤 운명이 기다려 맞아줄까. 탈리오니는 우리들의 것이다. 그녀가 사라지려고 하는데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프랑스도 땅에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마리 탈리오니는 1837년부터 1842년까지 5년간 러시아에 머무르면서 유럽 각지에 나가 200회 이상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1844년, 다시 오페라 좌의 객원으로 출연하여 <라 실피드>, <라 바야데르> 등을 추었습니다. 오페라 좌 관객들에게는 이것이 진정한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845년 런던에서 <파 드 캬트르>로 활동하다가 1847년 은퇴를 선언하며 그녀의 화려한 무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천상의 발레리나로 주목받은 마리 탈리오니는 지금까지도 역동적이고 뛰어난 테크닉, 경쾌한 도약을 지닌 무용수로 자주 회자됩니다.

 

 

 

 

매혹과 관능의 장미, 파니 엘슬러


 

 

 

▲ 파니 엘슬러(1810-1884) ⓒ김수진

 

 

 

 

파니 엘슬러(1810-1884)는 1834년 9월, 신작 발레 <폭풍>으로 오페라 좌에 극적으로 데뷔합니다. 엘슬러가 등장한 것은 작품의 제2막으로, 그녀의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극장의 오페라 글라스가 그녀의 얼굴로 향해지고, 큰 환호성이 극장 안을 메웠습니다. 일제히 큰 환호성을 질렀죠. 마리 탈리오니를 능가할 대항마의 등장이었습니다. 당시 오페라 좌의 경영인 베론의 주목을 받은 파니 엘슬러는 3막 발레인 <목발의 악마>(1836년 초연) 중의 한 부분인 '카츄샤'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합니다. 카츄샤는 원래 안달루시아 지방의 경쾌한 민속무용이지만 파니가 춘 카츄샤는 발레 풍으로 각색한 여러 캐릭터 댄스로, 그녀는 무용수 후로란다 역을 맡으며 관능적인 춤사위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녀의 춤추는 모습에 매료된 테오필 고티에는 이러한 찬사를 남겼습니다. "그녀의 작은 다리는 날아갈 것 같다가도 가만히 있고, 오케스트라로부터 신호를 기다린다. 큰 빗, 귀에 꽂은 장미꽃, 그 눈에 머문 요염함, 터질 것 같은 미소…. 장미꽃 같은 손끝에서는 검은 캐스터네츠가 흔들리고 있다. 매혹적인 한 순간, 그녀는 눈부신 풋 라이트 위를 미끄러지듯 저 손으로 관객의 온갖 욕망과 열정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파니 엘슬러는 카츄사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해나갔습니다. 그녀는 세부적인 움직임을 빠르고 정확하게 표현해내면서 관능미와 정열, 지상의 이미지를 상징하게 되었죠. 특히나 기존의 우아미와 절제미 넘치는 발레리나의 모습과는 달리 육감적인 몸매와 화려한 동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이교(異敎)적인 무용수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파니 엘슬러는 로맨틱 발레리나로는 처음으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는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에서 대성공을 거둡니다. 당시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코르셋, 숄, 구두약 등에 파니 엘슬러의 이름이 경쟁적으로 붙여질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녀는 오페라 좌에서 6개월간 휴가를 얻어 미국에 간 것으로, 오페라 좌에서는 그녀의 체류연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후, 파니 엘슬러는 유럽으로 돌아와 런던에서 <지젤> 무대에 오릅니다. 공연 후 오리지널 캐스트인 카를로타 그릿찌보다도 드라마틱했다는 평을 얻었고, 1848년 러시아로 가서 <지젤>로 데뷔, 연기력으로 또 한 번 호평을 받으며 러시아 발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관능미와 정열로 상징되던 그녀의 발레 인생도 차츰 속도를 늦추기 시작합니다. 1850년에 러시아를 더난 엘슬러는 이듬해 41세로 처음 무대에 섰던 빈의 케른트넬타 극장을 다시 찾습니다. 이곳에서의 은퇴공연을 마지막으로 파니 엘슬러는 그녀의 화려한 발레 인생을 조용히 마무리합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지상파의 자질을 잘 갖춘 발레리나였으며 지금도 빠른 스텝과 정교한 기교를 갖춘 무용수로 자주 회자됩니다.  

 

 

 

 

함께 읽을 만한 책


 

 

 

발레의 탄생

스즈키 쇼(김경자 역), 한성대학교 출판사

 

19세기 발레에 대한 연구서. 발레의 역사를 흥미로운 에세이로 풀어내는 책으로, 스즈키 쇼가 댄스 매거진을 통해 2년 6개월간 연재했던 <발레의 탄생>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무용 전공자에게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제공하고, 일반인들에게는 19세기 낭만발레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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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 눈물이로구나.' 오래전부터 문경새재를 이야기하는 가사에는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고개를 넘는 이들의 삶을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험난한 산새와 풍광이 아름답고도 비장한 문경. 청운의 꿈을 안고 새재를 넘었을 옛 선비들을 떠올리며 느릿느릿 문경의 시간을 거닐어봅니다.


 



옛 선비들의 과거 길을 따라서, 문경새재


 

 


 

△문경새재도립공원(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 문의: 054-571-0709) ⓒ한국산업인력공단

 


과거시험을 앞둔 선비들에게 문경새재는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동시에 염원이 길이었습니다.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선비와 학자들은 모두 문경새재를 넘었죠. 조선 초 문인 김시습이 넘었고, 율곡 이이도 넘었으며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서포 김만중도 넘었습니다. 이 밖에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선비들이 고개를 넘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험난한 고개만큼이나 시구도 잔잔한 듯 구슬픕니다. 다산 정약용은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긴손은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하며 굽이굽이 험한 길을 시구에 담았습니다. 율곡 이이가 문경새재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지은 시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위해 죽령과 추풍령이 아닌 문경을 택한 데는 지명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늘 상징적인 무엇에 의존하여 미래를 예견하곤 했어요. 죽령을 넘으면 시험에서 죽쑤듯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낙엽처럼 시험에서 떨어진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문경(聞慶)'을 택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마음을 흐트러뜨리거나 해(害)되는 일은 줄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문경새재는 아름답고 운치 있는 흙길로 남아 사람들에게 여유로움과 안락함을 선사합니다. 곳곳에 남은 과거의 흔적을 따라 유유자적 걸어봅니다.

 

 

 

 

△문경새재도립공원 ⓒ한국산업인력공단

 


 


두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품고서, 용추계곡



 

 

 

용추계곡(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 문의: 054-550-8543) ⓒ한국산업인력공단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대야산 자락에 문경의 비경으로 손꼽히는 용추계곡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용추(龍湫)라 함은 깊게 패인 웅덩이에 용의 승천과 관련한 전설이 더해진 곳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용추라는 지명이 꽤 많은데, 용이 물을 상징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기에 계곡 자연스레 어우러집니다. 이렇게 전설을 품은 곳마다 용이 박차고 오르면서 패인 웅덩이가 저마다의 자태를 뽑냅니다.


 


특히나 대야산 용추계곡을 오르다보면 최상단의 용추폭포를 만날 수가 있는데, 옛날 이곳 소에 살던 두 암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며 이러한 선명한 비늘 자국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용추폭포의 폭포수는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두 번에 걸쳐 떨어집니다. 바위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산새와 어우러져 특유의 시원함을 뿜어냅니다.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것은 용추의 모양인데 자연이 스스로 빚어낸 것이라 믿기에는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양을 지녔습니다. 상단은 폭포의 장엄함이 느껴지고 하단의 드넓은 바위는 아이들에게 미끄럼틀이 되어주죠. 용추계곡의 여름은 이렇듯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옛 영남대로의 중심축에 서서,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주변 사세를 이용해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고, 이동을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모산성은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의 격전지로도 활약했다고 해요.

 

 


 

진남교반(상), 고모산성(하) (경북 문경시 미성면 신헌리)

 

 


고모산성 정상에 오르면 아래로는 절경을 뽐내는 진남교반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진남교반은 경북팔경 중에서도 1경에 꼽힐만큼 많은 이들의 눈을 설레게 하는 곳인데, 고모산성에서 이러한 진남교반과 영남으로 이어지는 준령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산성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산새가 험하지만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선비들의 집념이 깃든 길이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험한 토끼비리(토끼벼루의 사투리, 명승 제 31호)는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서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쳐 내려와서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었다"라고 후세에 전해집니다. 토끼비리가 벼랑에 빗댈 만큼 험준한 길이었으나 적들을 피하기 위한 안전한 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토끼비리 사방으로 방문객들을 위한 나무계단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사성과 지형적 특징을 보존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을 마련해둔 것이어서 길을 걸을 때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옛 영남대로의 벼랑길을 실제로 걷는 듯이 조심스레 걸어야 할 듯합니다.





석탄 산업의 오랜 흔적을 따라서, 철로자전거


 

 

 

 

철로자전거(경북 문경시 구량리역, 가은역, 문경역, 불정역 / 휴무: 신정, 설, 추석)


 


과거의 문경은 석탄 산업을 위한 탄광개발지로 어느 때보다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오르락내리락 호황과 불황을 오가던 석탄 산업은 가스의 보급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1987년 석탄 산업 합리롸사업단을 설립하였고,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의 334개의 탄광을 폐광시켰습니다. 이때, 문경의 탄광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석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문경 또한 과거에 머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20여년 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가 이제는 과거의 흔적을 따라 달리는 관광지로 변모했습니다. 탄광산업의 열기가 문경의 독특한 문화산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석탄을 싣고 달리던 기차는 사라졌지만 이제는 사람들을 태운 철로 자전거가 그 위를 신나게 달립니다. 자전거를 타고 본 문경은 새롭습니다. 자전거 페달의 속도만큼 풍경이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는 변화가 즐겁죠.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재밋거리입니다. 어른들이 지나가는 풍경에 눈을 맞춘다면 아이들은 달리는 재미에 발을 맞춥니다. 문경에서 철로자전거의 시작과 끝은 다양하므로 어느 지역을 여행 중인가에 따라 구간을 달리 설정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현재 구량리역에서 먹뱅이 구간, 가은역에서 먹뱅이 구간, 문경역에서 마원 구간, 불정역에서서 신기방량 건널목 구간까지 총 4개 구간이 운영 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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